MBTI
대학교 계약직 면접을 볼 때 이야기이다. 면접관은 센터장 교수님, 팀장, 과장 이렇게 세 명이었다. 면접이 끝날 때쯤 센터장 교수님께서 질문을 했다.
“MBTI가 뭐예요? ”
“ENFJ 입니다.”
MBTI가 몇 년째 유행하고 있다.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만, 자꾸 잊어버려서 테스트를 몇 번이나 다시 했다. 내가 가장 많이 나오는 MBTI는 ENFJ이지만 ENTP도 가끔 나온다. 사실 내 상황에 따라 MBTI는 계속 바뀐다. 우울증이 심했을 때는 할 때마다 다른 유형의 MBTI가 나왔다. 그래서 MBTI를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나도 사람들에게 MBTI를 많이 물어보곤 한다. 다른 것보다 ‘E’와 ‘I’는 나름으로 쓸모가 있다. E는 외향적 I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주로 ‘I’인 사람들은 본인들을 ‘내성적’이라 한다. 그리고 본인이 내성적이기 때문에 ‘소심하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의견에 사실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주변을 잘 살펴보니 상황에 따라 늘 ‘E’ 성향이 나오는 나보다 훨씬 대범하게 행동하는 ‘I’ 성향인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사실 나는 국토대장정이나 성지순례 길을 여행하는 영상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서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옆에 동행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완전 180도 달라져서 극 ‘E’ 성향을 보인다. 반면, 많은 유튜버들이 본인은 ‘I’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카메라를 들고, 혼자 카메라에 이야기한다. 그리고 본인은 소심해서 친구가 옆에 있으면 영상을 찍기 힘들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인다.
또 다른 예로, 처음 대학교에 가고 첫 과제 발표를 할 때 난 정말 기절할 뻔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았고, 시야가 아예 안 보였다. 교탁을 잡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 짧은 순간 정말 큰 창피를 당할 뻔했다. 대학교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서 무대에 여러 번 올라가는 것으로 무대 공포증을 극복했고, 이년 정도가 지난 후에는 누구보다 뻔뻔하게 발표했다. 반면,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면 ‘I’ 성향인 사람들도 꽤 많다. 물론 그분들도 많은 어려움을 극복했겠지만, 무대에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면 정말 멋있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문득 이런 것들이 나에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MBTI에 관심을 갖도록 해주었다. 검색해 보았더니 ‘I’ 성향은 ‘내향성’이었다. 그리고 ‘내성적’인 것과 ‘내향적’인 것은 차이가 있었다.
내가 이해한 것으로 짧게 설명하면, 심리학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은 외부보다 내부에 관심을 더 가지는 사람 즉,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 즉,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는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아까 말했던 영상 촬영의 예가 여기서 적절하게 반영된다. 나는 ‘E(외향적)’ 사람이고, 혼자서는 야외촬영이 힘드나 동행이 있으면 가능한 사람이다. 반대로 ‘I(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서 하는 것이 동행이 있는 것보다 편한 것이다. 심리학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E’와 ‘I’를 이렇게 이해했다.
그러면 나는 왜 MBTI를 약간은 신뢰하는 것일까. 이것은 MBTI가 정확한 테스트임을 떠나서 사람들 스스로 믿고 거기에 매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스스로 그것에 맞추기도 한다.
사람들은 종종
“난 ‘I’라 소심해.”
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 말의 이면에는
‘나를 배려해 줘’
라는 뜻을 내포한 경우가 많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I’가 소심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속뜻인 배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이 지금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도 꼭 정답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원하기도 한다.
‘E’와 ‘I’는 대화의 스타일도 다르다. 진지한 대화를 하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하다 보면 ‘E’와의 대화는 자신보다 사회현상이나 일에 관한 이야기 등 외부의 이야기가 더 많다. 반면 ‘I’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나는 이런 ‘I’ 성향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은 ‘I’ 성향인 사람이 먼저 진지한 대화를 시도한다면, 이들은 자기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풀고 싶어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자기 내면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고 시간을 준다면, 언젠가는 스스로 그 부분을 풀어내기도 한다.
내 주변에는 유독 ‘I’가 더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보면 비율은 비슷했다. 물론 나도 ‘E’인 사람들이 더 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가끔 ‘I’ 성향의 사람들과의 속 깊은 대화가 더 기억이 남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