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어렸을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사실 그 시절에는 야구에 대해 몰랐지만, 외동이었던 나는 친척 형들을 따라서 그냥 좋아했다. 야구 규칙도 몰라서 보는 것은 지루했지만, 형들은 나를 위해 큰형은 투수, 둘째 형은 포수, 그리고 나는 늘 타자가 되어 놀아주었다.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운동과는 거리가 멀게 된 나는 형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어졌지만, 나는 어릴 적과는 다르게 직접 하는 야구보다는 보는 야구를 즐긴다. 보면 볼수록 야구는 참 복잡한 스포츠이다. 축구나 농구보다는 정적이지만 신체적 조건도 꽤 중요한 스포츠이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호수비 하는 장면이 나를 매료시킨다. ‘라면 먹으러 가는 것처럼 수비한다.’라는 뜻을 지닌 ‘라뱅’이 별명인 이병규 선수를 좋아했던 이유였다. 여유롭게 수비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표정 짓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야구 해설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야구는 심리 싸움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종종 팀이 점수를 낸 다음 이닝에 투수들이 흔들리고는 한다. 너무나도 잘 던지던 투수가 그 짧은 시간에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흔들린다. 야구팬들은 이런 모습에 함께 불안해한다. 반대로 아슬아슬하게 이닝을 막아가던 투수가 팀의 득점 지원에 다시 무서운 투수가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야구는 팀 스포츠이다. 투수가 흔들릴 때는 야수들이 호수비로 도와주기도 하고, 수비수들이 에러를 범했을 때는 투수가 압도적인 피칭으로 야수들을 도와줄 때도 있다. 감독들이 개인보다 팀이 우선이라고 강조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만큼 야구에는 심리적인 요인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선수들에게는 ‘입스(YIPS)’라는 증상이 오기도 한다. 입스는 부상이나 슬럼프에 빠졌을 때 혹은 자신의 실수로 누군가를 부상시켰을 때, 선수들이 불안감과 압박감을 느끼면서 본인들이 기존에 하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무의식에 있는 정신적 불안감이 문제라고 한다. 결국 이런 마음의 병을 극복해 내야 본인의 야구를 다시 보여줄 수 있다.
나는 사회생활에서 세 번 실패 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나를 원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한 번도 직접 어떤 회사에 직접 지원해서 취직한 적이 없고, 나를 불러주는 곳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모두 다 결과가 좋지 않았고, 이 경험들은 나에게는 마치 야구선수들의 입스처럼 다가왔다. 사회생활에서의 아픔이 보통의 인간관계에도 적용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매우 편하게 생각되는 존재이다. 나는 늘 이런 것들에 대해 내가 조금은 손해 봐도 된다고 생각했었고, 언젠가는 나를 알아주고 보답받을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더욱 나를 편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점점 더 나에게 무례하게 대했고, 별다른 불만 없이 항상 웃고 있는 내가 괜찮아 보였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번을 겪은 나는 그래도 계속 버텨왔지만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빠진 나는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몇 달이 지난 뒤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난 그들에게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그들은 나에게 잘못된 행동을 했던 것이 맞다. 이렇게 힘들면서도 그들을 이해하려 한 부분이 문제였다. 그들은 나에게 잘못해놓고도 오히려 더 이상 받아 주지 않는 나를 원망하고, 더 나아가 심지어는 나 때문에 모든 것을 망친 것처럼 말하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최고로 추켜올리며 떠받들던 사람들이었고, 나는 부당한 대우에도 인정받는 느낌이 좋아서 악으로 버텨나갔던 것이다. 나약해진 나는 여전히, 계속해서 나에게서 문제를 찾고 있었다.
해결 방법은 사실 단순했다. 사람 관계를 잘 못 끊어내는 나지만, 결국 사람은 언젠가 헤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나랑은 연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도 있었고, 사람을 끊어내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는 그들을 같이 끊어내는 것이 힘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은 나도 살아가야만 한다. 그들은 나 없이도 너무나도 잘살고 있고, 내가 그들에게 폐를 끼친 것은 없다. 오히려 지금 무너진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과거에 매몰되어서 내가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 민폐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아직 극복하지는 못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내 마음은 많이 다르다. 여전히 마음은 너무 아프고 힘들다. 하지만 나에게 상처를 줬던 그들은 이미 나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을 것이고, 너무나도 잘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보란 듯이 잘 살아가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