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불통의 시대다.
자신은 존중받고 배려받아야 하지만 정작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모르고,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정말이지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사실조차 잊었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만 할 뿐 대화를 할 줄 모르며,
본인과 의견이 다르면 자신의 적이고, 싸우거나 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대화를 통해 타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예 잊은듯하다.
영화 <남한산성>은 <오징어 게임>으로 유명한 황동혁 감독의 2017년 작품이다.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 중 하나인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다룬 영화로, 소설가 김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의 시작은 최명길(이병헌 배우)의 눈빛으로 시작한다. 씁쓸하면서도 당당한, 지쳐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강인한, 오랑캐라 여겼던 청에게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명길의 눈빛이다.
이어서 김상헌(김윤석 배우)이 노인의 안내를 받아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장면이 나온다. 상헌은 노인에게 같이 남한산성으로 향할 것을 권유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청군에게도 길을 안내하겠다는 노인을 칼로 벤다.
명길은 말한다.
"적의 아가리 속에도 분명 삶의 길은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상헌이 말한다.
"삶과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지인데 하필 적의 아가리 속 이겠나이까."
명길과 상헌은 완전히 대립되는 의견을 펼친다.
명길은 치욕을 당하더라도 우선 살아야 후일도 도모할 수 있다는 주화파이고,
상헌은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자는 척화파이다.
우리는 이 스토리의 끝을 이미 알고 있다. 역사의 결과로만 보았을 때는 명길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인조는 결국 굴복했고, 삼전도에서 청의 황제 앞에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 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리고 명길과 상헌, 둘의 대립은 이렇게 끝이 난다.
명길과 상헌의 의견은 달랐지만 둘의 마음은 같았다.
'나라를 위하고자 함'
이 영화에서 정녕 나라를 위하고 왕과 백성을 위한 것은 결국 명길과 상헌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임에도 어떤 관료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채 여전히 자신의 밥그릇과 품위를 지키는 것에만 급급하다. 겉으로만 왕과 나라를 위할 뿐, 결국 어떠한 것도 책임지지 않은 채 떠넘기기에 바쁘다.
그렇기에 명길과 상헌은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한다.
대립되는 의견의 대표들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가장 믿는다.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상대를 모함하지 않는다.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상대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는다.
명길은 자신이 배신자로 낙인찍힐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끝까지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자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상헌은 자신으로 인해 백성들이 희생당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백성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려 한다.
명길은 현실적인 삶을 택했고, 상헌은 정신적인 삶을 택했다.
필자라면 어땠을까.
필자는 정신적인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명길이 옳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결과를 알았기 때문일 터이다.
만약 결과를 몰랐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끝까지 싸우려 하는 상헌이 옳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는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이 더 많으니까 말이다.
단순하게 보면 <남한산성>의 인물 대립구조는 명길과 상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대립구조는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명길, 상헌 과 자신들의 이권만을 챙기려는 신하들이다.
명길과 상헌은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한다.
반면 나머지 신하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함하고, 선동하고, 떠넘긴다.
진짜 눈과 귀를 열고 있었던 사람은 명길과 상헌뿐이었다.
결국 조선은 패배했고, 굴욕을 당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다른가.
개인의 취향 : ★ ★ ★ ★ ★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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